┃▒◈▒┃─여행

독립기념관 방문정보

지오5 2008. 9. 26. 13:26


1981년 3월 3일 장충체육관에 5천명의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이 모였다. 1972년 평화적 통일을 모색하기 위해 설립된 모임이었지만 실제로는 대통령을 뽑는 거수기들의 모임. 인간이 아니었다. 3김은 구속되거나 가택연금. 단독 출마한 위대하신 전두환 장군을 대통령으로 모시는데 불만없지유? 박수치라우. 짝짝짝. 제 12대 대통령은 이렇게 뽑혔다. 까불면 공수부대가 기관단총을 난사하니 방법이 없다.


땡전: 야, 왜 이렇게 사회가 시끄럽냐. 수출도 잘되고 국민소득도 올랐드만.

딸랑딸랑: 왜놈들이 또 교과서를 왜곡했답니다. 독립기념관이나 하나 짓죠. 문화적인 이벤트를 계속 만들어 관심사를 다른 데로 돌려야 합니다.


1982년 8월 31일 국민성금을 모금한다. 온 나라가 뒤집어졌다. 우리 국민은 독재는 참아도 일본이라면 이를 간다. 36년의 수모를 생각하면. 8살 코흘리개부터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눈물겨운 성금의 행렬이 줄을 인다. 일본을 쳐들어가 식민지화하는 방법은 없을까. 복수심. 이거 건드리면 아무도 못 말린다. 몇 달 만에 430억이 거친다. 이거 장난이 아니구먼. 일단 국민의 관심을 정치로부터 문화로 돌리는 데는 성공했는데. 이거 잘못 처리했다가는 정권이 흔들리게 생겼다.

청와대에서 두 가지 지침이 내려왔다.


제 1호, 독립기념관 대지는 서울과 대전사이로 할 것.

제 2호, 땡전이 준공식에서 테이프 커팅 할 수 있도록 86년 8월 15일을 디-데이로 할 것.


독립기념관 추진위원회의 사무처장 박종국은 날 밤 샌다. 100만평의 땅을 빨리 찾아 독립기념관을 지어라. 청와대에서는 날마다 독촉이고. 4천만 국민이 동의하는. 목이 날아가게 생겼다.

땅 찾았나.

아직.

각하 열 받았어.

알았지?

삼청교육대 알지?

예.

남산 기슭의 한국의 집에 모인 추진위원들은 좌불안석(坐不安席 앉아도 자리가 편안하지 않다)이다. 자칫하면 삼청교육대 가게 생겼다. 각 도지사에게 공문을 보냈다. 두 곳씩 추천할 것. 강원도지사가 찾아왔다. 우리 강원도는 태백산맥 때문에 40년 동안 오지에요. 우리도 좀 뜨자고요. 제주지사가 찾아왔다. 우리 무시하지 마세요. 표가 50만장이에요. 치열한 로비전이 펼쳐진다. 전라도는 가만있었겠나.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큰 프로젝트라. 목숨 건 로비전. 청와대에서 또 전화가 왔다.

요번 주 내에 보고 안 하면 간단한 세면도구 준비하고 청와대로 들어오란다. 피가 마른다. 아, 방법이 있다. 몇 년 전 자료를 들춰보니. 문화방송에서 독립기념관을 용인에 지으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추진위원에 김원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그래 이 친구한테 떠넘기자. 정 안되면 이 친구를 삼청대 보내지 뭐.

어이, 김 소장 한 번 봅시다. 조선호텔 커피숍에 마주 앉았다. 어이, 김 소장 풍수도 좀 안 다니 독립기념관 터를 좀 찾아 봐 주시오. 아니 김수근선생이나 김중업선생한테 부탁하시지요. 아, 그분들은 일본에서 교육받았잖아요. 우선 일본냄새가 나는 건축가는 배제했어요. 김 소장은 43년 생이니 8.15 해방 때 3살이었죠? 예. 45년에 유치원 다닌 세대는 무조건 안 돼요. 1년만 일찍 태어나도 예선탈락이다. 태어날 때도 잘 태어나야 뜬다. 다음날 한국의 집으로 가서 30여 개 후보지를 검토한다. 즉석에서 5개를 골라낸다. 어라 김 소장 어떻게 한 시간 만에 25개를 떨어트려요. 우리는 몇 달 동안 하나도 못 떨어트렸는데. 아니 여기 콘타 그려진 지도만 봐도 산세의 흐름을 알 수 있어요. 음 그렇군. 근디 콘타가 뭐요. 당신 맘대로 하세요.

또 전화가 온다. 아 곧 보고 드리겠습니다. 며칠만 더. 똑바로 하세요. 뚜. 끊어진 전화기를 들고 박처장은 한숨을 쉰다. 우째 이런 시련을. 다음날 새벽 군용ㅉㅣㅍ차를 개조한 박처장 자가용 타고 청주 상단산성으로 갔다. 청원군수가 마중 나와 있다. 우리 군을 방문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명당이긴 한데 너무 좁다. 10만여 평 가지고는. 며칠을 헤맨다. 5군데 모두 충청도다. 하루 종일 다니다가도 잠은 꼭 서울에 와서 잤다. 청원군수는 꼭 주무시고 가라고 하지만 말이 나올 것 같아서. 접대니 뭐니.

마지막 날 오후 지친 걸음을 서울로 돌리려는데 청원군수는 히든카드를 내민다. 맘에 드시는 땅이 없으십니까. 그렇다면 숨겨 논 땅이 있긴 한디. 흑성산 아래 목천면으로 가시죠. 어둑어둑해지는 저녁놀 사이로 펼쳐진 목천면은 김원을 감동시킨다. 아니 왜 이제야 내 놓으세요. 아, 실은 이곳을 공원묘지로 쓰겠다는 허가신청이 들어왔는데. 공원묘지로 허가를 내주면 군 재정에 큰 도움이 되는 관계로. 히든카드닙다.

밤새 택리지, 동국여지도를 뒤적여 흑성산의 풍수를 확인한다. 다음날 새벽 다시 흑성산으로 갔다. 명당. 좌청룡 우백호다. 바로 문공부 차관에게 보고했다. 허문도 차관은 내일 같이 가자고 한다. 다시 이진희 장관에게 불려갔다. 당신이 김원인가. 예. 경기고등학교 나왔더구먼. 예. 대학교는 아무 소용없어 고등학교를 잘 나와야 돼. 모래 함께 가보지. 예. 그런데 허차관이 내일 가자고……. 아, 그 친구는 거기 왜 가. 빠지라고 해.

아침 10시 4대가 출발했다. 박처장은 이장관차에 슬쩍 김원을 밀어 넣는다. 당시 문공부 분위기는 가능한 이 장관을 피한다. 하도 성깔이 괴팍해 일단 멀리하는 게 상책. 문화예술국장과 박처장은 뒤차로 도망간다. 갈 때라도 편히 가야지. 하루 종일 시달리는데. 교통경찰이 신호를 녹색으로 다 바꾼다. 논스톱으로 흑성산으로 달린다. 당시에는 장관차도 녹색신호였다. 하긴 차도 별로 없던 시절이니.

어이 김 소장 내가 좀 피곤해서 좀 자께. 예. 한 시간쯤 자고 난 이 장관이 눈을 떴다. 장관님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 근디 말이죠. 대대로 잘살기를 바라는 우리 국민 습성상 풍수만 얘기하면 다 뿅 가요. 일단 좌청룡 우백호 배산임수하면. 그냥 산이 아름답다든가, 교통이 편리하다든가 하면 팔도에서 떼거지로 뎁빌거에요. 그래!

일국의 장관이 말이야. 미신을 얘기해야 되겠어? 내가 말이야 얼마 전 청운동으로 이사했는데 풍수쟁이들이 다 터가 안 좋다는 거야. 근데 청운동으로 이사 가서 6개월 만에 장관 됐걸랑. 무식한 것들 같은니라구. 아, 그래요? 근디 말이죠. 터가 아무리 쎄도 사람에 따라 달라요. 암반이 많은 청운동이라도 장관님한테는 맞아요. 장관님 양기가 쎄거든요. 터의 양기가 아무리 쎄도 사람의 양기가 쎄면 좋은거에요. 그래! 이 장관은 씩 웃는다.

그 날 청와대에 보고된다. 목요일에 보고했는데 토요일 아침 10시까지 청와대로 들어오란다. 초스피드. 토요일 아침 청와대 헬기장에 김원은 선다. 땡전이 정식으로 거수경례를 한다. 이 우찌된 일인가. 일국의 대통령이 나한테. 아니다. 안충생 추진위원장한테 예우를 갖춘다. 안중근 선생의 5촌 조카인 안충생 선생은 한때 육사교장으로 전두환을 가르쳤다. 대통령은 스승에게 예를 갖춘다. 음. 헷갈리는구먼. 도대체 스승한테 뭘 배운 거야. 자네가 김원인가. 땡전과 악수한다. 자 가지.

똑같은 헬기 3대 서 있다. 오늘 대통령이 어느 헬기에 탈지는 아무도 모른다. 테러범의 공격에 대비해 안 가르쳐준다. 2호기에 대통령이 탄다. 그럼 자동이다. 1호기에는 경호원들이. 3호기에는 기타 등등이 탄다. 3호기에 동승한 의전비서관은 이렇게 말했다. 야, 원아 너 어쩌려고 사고 치냐. 오늘 갔다가 각하가 맘에 안 든다고 한마디만 하면 우린 다 삼청대 가야 돼. 의전결례도 모르냐. 안심해. 명당이야. 당시 의전비서관은 경기고등학교 동기.


대통령은 이미 흑성산을 알고 있었다. 굼발이때 을지훈련하면서 제일 먼저 점령하던 흑성산이었다. 미군 레이더기지 때문이다. 1호기가 먼저 내린다. 흑성산은 이미 경호원들이 점령한 상태. 대통령, 이 장관, 안위원장이 얘기를 나누고 기타 등등은 멀찌감치 도열. 어이 김 소장 이리 좀 와보지. 이장관이 부른다. 각하께 풍수 좀 설명 드리지.

예. 그러니까 말이죠. 이곳에서 내려다보시면 안산이 겹겹으로 교배를 하는 지형이라 산이 깊고. 아침마다 흑성산에게 절을 하는 형상이라. 어쩌고저쩌고. 잘 갖다 붙이는구먼. 조경 잘하면 괜찮겠어. 언론에 슬쩍 흘려봐. 뭐라구들 하는지. 자 돌아가지. 다시 헬기는 뜨고 저 멀리 팬텀기 편대가 따른다. 청와대를 나온 이 장관과 김원은 술집으로 향한다. 술잔을 기울이던 이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근데 말이야. 김 소장. 오늘 일은 다 비밀로 하고. 김 소장이 다 뒤집어 써야겠어. 예! 청와대가 나섰다가 잘못되면 망신이니까. 김 소장이 언론 좀 맡아 줘. 아, 예에.

새벽 한시. 술 취한 김원은 반포 23평 아파트로 향했다. 집 거실은 벌써 20여명의 기자들로 가득 차 있고. 이미 청와대는 언론사에 김원이 주범이라고 흘렸다. 아니 김 소장님 흑성산으로 정해졌다면서요. 여보. 거기 스카치 좀 내와. 밤샌다. 풍수가 어쩌고저쩌고.

이태원 외인아파트 50평에 마스터플랜 팀이 입주한다. 김원은 피지컬 담당, 김석철은 숫자 담당. 한 달 동안 밤 샌다. 소주는 기본이고. 전국의 부동산 투기꾼들은 대책회의를 연다. 야, 목천면이 물 좋다는데. 땅을 좀 사두자. 너 죽으려고 환장했냐. 삼청대 가고 싶냐. 투기꾼들은 유사 이래 처음으로 전공인 땅 투기를 포기한다. 그만큼 삼청대는 무서웠다. 당시 거래가는 평당 2,500원, 말 안 나오게 5,000원씩 지급. 30여 채의 민가에 살던 주민들도 플래카드 시위 없이 조용히 떠나간다. 독립을 위한 일이라니.


김수근: 야, 원아.

김원: 예

김수근: 야, 동경대는 안 되고 요코하마 고공은 되냐?


김중업은 김원을 꼬신다. 어이 김 소장 우리 둘이 말아먹지. 안되는디유. 현상설계 해야 되요. 독립일에 잘못 꼈다가는 역적 되요. 청와대의 교육수석이 들어오란다. 어이 김 소장 이 파일이 뭔지 알아. 모르는디유. 자네 태어날 때부터 모든 기록이 다 이 파일 안에 있어. 중정, 보안사에도 올라가 있어. 당신 어제 박처장하고 북창동 <자매>에서 술 먹었다며. 여기 영수증도 있어. 소주 먹었드만. 돈은 자네가 계속 냈드만. 예. 처신 잘해. 여기저기서 난리야. 김원이 말아먹는다고. 양주 먹지마. 큰일 나. 소주만 먹어. 예. 소주만 먹어야지. 소주는 접대가 아니라니까.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청회가 열린다. 아, 그러니까 어쩌고저쩌고. 김원은 브리핑한다. 질문있는디유. 앞줄에 앉은 광복회 할아버지다. 씩씩거린다. 아니 독립기념관에 기와 얹을 거요. 안 얹을 거요. 그건 설계자 마음이라. 기와 안 얹으면 도시락 폭탄 만들어 폭파시킬 거니까 알아서 해유. 현상설계 공모다. 당선작에 설계권 줌. 국내 최초다. 당선작 김기웅. 이제 좀 쉬어야겠다.

김원은 코티나를 콩코드로 바꾼다. 이게 화근이다. 대학동기인 김기웅이 당선사례로 자가용 바꿔 줬다나 뭐라나. 짜고 친 고스톱이라고 난리가 났다. 김기웅을 잘 모르는구먼. 알 사람은 다 아는데. 87년 8월 15일 준공식. 근디 우째 이런 일이. 불이 난거다. 그것도 겨레의 집에서. 김기웅과 대림건설은 곤욕을 치른다. 줄줄이 삼청대행. 음. 안 끼길 잘했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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